CRM으로 고객 관리를 시작하는 방법

얼마 전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 손님 얼굴은 기억나는데, 지난번에 무엇을 샀는지는 가물가물하다는 것이다. 손님이 늘수록 이런 일이 생긴다. 그때 필요한 것이 CRM이다. 이름은 조금 딱딱하지만, 고객과 나눈 대화와 구매 기록을 모아 다음 응대에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CRM은 연락처를 모으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CRM은 고객 관계 관리라는 뜻이다. 고객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것만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 언제 문의했는지, 어떤 상품에 관심을 보였는지, 약속한 답변은 보냈는지까지 이어져야 쓸모가 생긴다.
예를 들어 같은 운동화를 산 고객 두 명이 있다고 해보자. 한 명은 사이즈 교환을 문의했고, 다른 한 명은 다음 달에 가족용 제품도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똑같은 할인 문자를 보내는 것보다, 첫 번째 고객에게는 교환 진행 상황을 알려주고 두 번째 고객에게는 가족용 제품이 준비됐을 때 소식을 전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CRM은 이런 차이를 놓치지 않게 돕는다.
고객 입장에서도 매번 사정을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이전 문의를 알고 응대한다면 대화가 한결 편해진다. 기록의 목적은 고객을 숫자로 나누는 데 있지 않다. 고객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약속을 지키는 데 있다.
처음에는 기록할 항목을 작게 잡는다
CRM을 시작할 때 가장 흔한 실수는 입력 칸부터 잔뜩 만드는 것이다. 항목이 많으면 바쁜 날에는 기록을 미루게 된다. 우선 고객을 다시 만났을 때 필요한 정보만 남겨도 충분하다. 고객 이름이나 식별 번호, 연락한 날짜, 문의 내용, 다음에 할 일 정도면 시작할 수 있다.
- 고객 구분: 처음 문의한 사람인지, 구매한 적이 있는 사람인지
- 관심사: 찾는 상품이나 해결하려는 문제
- 최근 대화: 문의 날짜와 안내한 내용
- 다음 행동: 누가 언제 다시 연락할지
가령 상담 뒤에 ‘견적 보냄’이라고만 적으면 다음 담당자는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기 어렵다. ‘10월 18일 견적 발송, 고객이 배송비 확인 요청, 20일에 답변하기’처럼 쓰면 바로 이어서 일할 수 있다. 기록을 길게 쓸 필요는 없지만, 다음 행동은 분명해야 한다.
고객 정보는 필요한 만큼만 받는 편이 좋다.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낼 계획이 없다면 생년월일까지 모을 이유가 없다. 연락처를 받을 때는 어떤 안내에 사용할지도 고객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 마케팅 메시지를 받겠다는 의사와 주문 처리에 필요한 연락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고객이 움직이는 순서에 맞춰 관리한다
기록할 항목을 정했다면 고객이 처음 찾아와 다시 구매하기까지의 흐름을 그려보자. 업종마다 다르지만 보통 문의, 상담, 구매, 사용 중 문의, 재구매 같은 단계가 있다. 각 단계에서 고객이 궁금해할 만한 것과 우리 쪽에서 해야 할 일을 한 줄씩 적으면 된다.
예를 들어 수제 가구를 판다면 첫 문의에서는 크기와 예산을 확인하고, 상담 뒤에는 견적을 보내고, 구매 뒤에는 배송 일정을 안내한다. 배송이 끝난 다음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고객에게 같은 날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 아니다. 고객이 실제로 기다리는 답을 제때 주는 일이다.
처음부터 자동 메시지를 여러 개 만들 필요도 없다. 먼저 사람이 직접 처리하면서 자주 반복되는 일을 찾아보자. 배송 일정 안내를 매번 빼먹는다면 그때 알림을 설정하면 된다. 반대로 한 번만 나타난 예외 상황까지 자동화하면 관리할 일이 더 늘어난다.
잘 운영되는지는 작은 숫자로 확인한다
CRM에 기록이 쌓이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도 조금씩 보인다. 다만 숫자를 너무 많이 보면 오히려 행동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문의에 답하기까지 걸린 시간, 답변을 약속한 날짜를 지킨 비율, 구매 후 다시 찾아온 고객 수처럼 지금 하는 일과 가까운 지표를 고르면 된다.
한 달에 문의 100건이 들어왔는데 답변이 늦어진 건이 20건이라면, 새 광고를 고민하기 전에 답변이 밀리는 시간대를 확인하는 편이 낫다. 또 재구매 고객이 적더라도 상품 자체의 사용 주기가 긴 업종일 수 있다. 숫자 하나만 보고 응대가 잘못됐다고 단정하지 말고, 고객이 남긴 말과 함께 읽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만 기록을 살펴봐도 놓친 약속이 눈에 띈다. 끝난 일은 상태를 바꾸고, 오래된 연락처는 확인하며, 담당자가 바뀐 고객은 다음 행동의 주인을 정해두면 된다. CRM 도구가 복잡할수록 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작은 가게라면 표 하나로도 시작할 수 있고, 팀이 커져 기록을 함께 봐야 할 때 도구를 바꿔도 늦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CRM은 고객 이름을 많이 저장한 곳보다 대화가 끊기지 않는 곳에 가깝다. 어제 들은 요청을 오늘의 응대에 반영하는 것. 그 작은 습관이 쌓일 때 고객도 다시 연락하기 편해진다.
